지는 것이 이기는 것 인생을 살면서 많이 듣는 말 중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으로 부터 들었고 학생시절에는 친구나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들었다. 역설적인 표현으로 나름대로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진짜 그럴까 하는 의문도 항상 같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지면 지는 것이지 왜 이기는 것인가? 그러면 이기기 위해 져야하는 것인가? 이기기 위해 졌다면 이겼으므로 만족할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뭔가 확실한 깨달음은 오지 않았고 그저 다투지 말고 살라는 뜻으로 이해하곤 하였다. 이 말의 뜻을 그런대로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인생의 전환기라 할 수 있는 결혼을 하고 나면서부터이다. 결혼하고 나서 그저 좋기 만하고 서로의 좋은 점만 보이던 시절이 지나며 가정적으로나 가족적으로 여러 문제가 대두되면서 부부싸움이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서로 자란 환경과 가치관과 생각이 다른 둘이 만나서 사니 의견충돌은 당연한 것이었고 서로 자신의 의견이 더 옳다는 주장을 하다보면 별 일도 아닌 것이 커져서 감정이 많이 상하곤 했다. 하지만 부부싸움 끝에는 늘 후회가 따랐는데, 내가 조금 더 참을 걸, 내가 조금 심한 말을 했구나 하는 후회 끝에 다음에는 져주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곤 했다. 그것은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났다기 보다는 내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렇기에 그런 결심 후에도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언제 그런 결심을 했냐는 듯 지기 싫어서 열심히 싸우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성자들의 대부분이 이런 에고적인 자아를 벗어버리라는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싸울 때는 "나는 나고 너는 너이며 지는 것은 지는 것이고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다"라는 확신이 솟구치니 말이다. 언제인가는 아주 결심을 확고히 해서 그래 진짜로 한번 져줘 보자 그러면 이긴 결과가 나올까하는 생각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억지로 버텨본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비록 큰 다툼으로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왠지 나만 손해인 것 같아 억울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져 준 것을 상대방은 알까? 괜히 나만 힘들고 상대방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고 그 억울한 감정은 몇일을 갔다. 결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오히려 그 다음 번 싸움에서 내가 이전에 힘들게 져 준 것을 알아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싸움만 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진정 "지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더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는 것의 이유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다른 이유에서 그냥 겉으로 지는 것은 결코 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결코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거나 이기는 결과에 괘념치 않을 정도의 너그러운 마음과 상대방의 공격까지 끌어안고 품어 녹일 수 있는 넓은 아량 그리고 사랑, 그 이유로 진다면 그것은 참되게 지는 것이요 그러므로 결국 둘이 모두 이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을 좀 더 가다듬어 보면 "사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결국 누군가 나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니 져 주어라” 라고 한다면 나는 “사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니 사랑해 주어라”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필시 이 뜻이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넓게는 남과 북의 갈등과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 그리고 노사의 갈등, 더 좁게는 우리 대학사회 구성원간의 갈등에도 적용될 것이다. 이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 사랑하자. --- 본 글은 한성대학교 신문 의화정란에 실었던 글입니다 ---